중보기도에 대한 박형용박사의 자료

백성기 0 5,224 2008.08.19 18:18
총신대학교학장을 역임하신 보수신학의 거장 뱍형용박사의 저작을 참고하여    중보기도를 중재기도=중도 , 혹은 대언기도=대도 라 하는 것이 타당함.          교의 신학 -기독론-제사직 ( 박형용박사저 ,1977년9월15일, 한국기독교교육연구원발행)    제 3 편 중보 3 직    제 1 장 그리스도의 중보사역    제 2 장 선지자.    제 3 장 제사장      제 1 절 제사직의 성질      3. 특이한 입장과 직무    히 5:1 은 제사직의 특이한 입장과 직무를 부분적으로 지시한 모범적 구절이다. 이절 상반의 (대제사장마다 사람가운데서 취한 자이므로... 사람을 위하여)라고 한 말씀은 제사장의 입장을 백성의 대표자로 말함이요 (예물과 속죄하는 제사를 드리게 하나니)라고 한 것은 제사장의 직무는 제단에 봉사함이라는 의미의 표현이다.      1)백성의 대표의 입장 -  (중략) - 제사장은 하나님에게 정당히 접근하기 위한 의식적 수행을 강조하여 제사장은 하나님에게 정당히 접근하기 위한 의식적 수행을 강조하여 백성의 대표로 하나님에게 나가는 자의 입장을 보인 것이었다.      2) 제사드림과 대도의 직무 -( 중략), 그는 하나님과 죄인을 화목하기 위하여 예물과 제물로 죄인들의 죄를 속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제자장의 직무는 그 보다 더 포함하였으니 그는 또한 백성을 위하여 간구하며(히7:25 참조) 하나님의 명의로 그들에게 축복하는 것이었다.  그의 대도는 다만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자기의 제사드림과 직원의 효능을 근거로 하여 백성을 위한 자기의 기도가 응답될 것을 요청함이었다.  이리하여 제사장의 특이한 직무는 제사드림과 중재의 두가지라고 말 할 수 있다.      4. 제사직의 요의    성경에 의한 제사직의 요이를 종합하여 개괄하면 이렇게 진술될 것이다. 제사장은 백성의 대표라는 것, 그의 직무는 제사드림과 중재기도라는 것은 위에서 이미 구명되었다. ..... 중략.....제사직의 요의의 모범적 진술의 두어 예를 들면 페어베인은 말하되 (제사장은 본질적으로 사람들 중에서 하나님 앞에 서기로 허용된 중보이니 그 목적은 제일은 제사에 의한 속죄요 (히5:1, 2, 3) 제 이는 중재기도였다 (눅 1:10, 출 30:8, 계 5:8, 8:3,4) (Fairbairn, "Typology", Vol. Ⅱ., Part Ⅲ ., chap. Ⅲ).  스트롱은 말하되 (제사장은 사람을 위하여 하나님과 처사하도록 신적으로 임명된 인물이었다. 그는 그의 직무를 수행하되 제일은 제사를 드림으로, 제 이는 중재기도를 올림으로 하였다) (A. H. Strong: op. cit., Ⅱ.,p. 713).      5. 그리스도의 제사장직의 성경적 증명        1) 구약은 .. (중략)..        2) 신약에는 - 그리스도를 제사장이라 칭한 유일서신 히브리서가 있을 뿐, 동서에는 특히 제사장의 이 대 직무인 제사와 중재기도의 사역을 그리스도에게 돌렸다(히 9:26, 10:12, 7:25)  다른 다수의 신약서는 그리스도의 제사적 사역에 언급하였다. 그 중에 특별히 그리스도의 제사드림과 대도를 말하는 구절들 (요일 2:1, 2, 롬 8:34) 이 있다는 사실은 미리 지억하여 둠이 가하다.        3) 요의의 체현. ... 중략 .. 일반적 제사직의 가장 근본적 중심되는 요의는 제사드림과 중재기도를 제사장의 이대직무로 긍정함에 있었으니 그리스도의 제사직도 이 두 가지를 주요직무로 가진다는 것은 예기될 수 있는 것이다.      제 2 절 그리스도의 제사 드리신 사역            재 3 절 그리스도의 중재 대언사역      2. 그리스도의 제사직의 영원성    아론의 제사직은 일시적임에 대하여 그리스도의 그것은 영원적임은  (1) 그는 죄를 위한 단일제사로 신자들을 영원히 완전케 하신 때문이요  (2) 그는 영원히 생존하여 신자들을 위하여 중재 대언하시는 때문이요 (3) 그의 중보로서의 인격과 사역은 우리의 열납의 근거와 우리와 성부의 교통의 매개로 영구히 계속되겠기 때문이다.  이 문맥에서 강조를 요하는 것은 제 (2)의 그리스도의 중재 대언사역이다. ....중략... 그리스도의 중재 대넝이 그의 제사적 사역의 절대적으로 중요한 부분임은(히 7;25) 그가 중보로서 가능적 구원의 길을 여는데 멎지 않고 성부의 주신 자들 각 사람의 구우너을 현실적으로 완수하며 각 사람을 성부에게 <소개>하여 주심에 이것이 필요한 때문이다 (요17:12, 얩 2:18, 3:12). 그리스도의 백성과 성부와의 교제는 중보적 제사장으로서의 그를 통하여서만 유지도리 것이다. (시 110:4, 계 7:17)      4. 그리스도의 중재사역의 성경적 증명      3) 사역의 명칭.  승천하신 그리스도께서 성부의 우편에서 자기 백성의 보혜사와 대언자로서 하시는 사역은 그들과 하나님 사이에 중재하시는 일이다.  (중재하시는 것)<“to make intercession">의 히브리어 (파가)는 본래 (치는것) <"to strike upon">을 의미하였고 후에 좋은 의미로 사용되어 (어떤 사람을 진정으로 부딪치는 것)을 의마하게 되었다.  이 (부딪치는 것이 다른 사람을 위한 것인 때에 이 말의  의미는 (중재하는 것)이었다.  (중재하는 것)의 헬라어 동사(        )는 신약에 다섯 번 나타나는데(행 25:24, 롬 8:27, 34, 11:2,히 7:25), 그 중의 세 구절에서 (간구하심)으로 한역되었고, 명사(        )는 딤전 2:1에서 (도고)로 한역되고, 영어 ”intercession"은 라틴어 “intercedo"에서 왔는데 ”intercedo"는 사이에 가는 것<“to go or pass between">을 의미한다.    ‘Intercession"(중재 仲裁)이 특종적 의미를 가진다는 것은 바울의 진술에서 보여지나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라)한 것이다.(딤전 2;1).    이것은 다른 사람들과 하나님 사이에 서서 전자를 위하여 후자에게 진정함을 뜻한다.  요엘 2:17에서 제사직의 중재적 성격이 보여지나니 ( 성구생략). 사사, 제사장, 선지자인 사무엘은 자주 백성을 위한 중재자로 나셨고 범죄하는 사울을 위하여 밤새도록 기도한 일도 있었다. (삼상 15: 11).    Intercession이 그리스도의 중보사역에 사용된 때에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행동하심)을 의미함은 물론이다.      상술한 바에 의하여 결론하면 그리스도의 성부 우편에서 우리 위해 하시는 일은 (중재) 혹 (중도)<중재기도>라고 명칭함이 적정할 것이다. 역문성경에는 (중재) 대신 (간구)로 되어있으나 (간구적 사역)이라 명칭함이 적당할 것이나 (간구)는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중재한다는 의미를 나타내지 못하므로 만족하지 못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하늘위의 사역을 (중재) 혹 (중도)라고 부르는 동시에 한역문에도 나타난 그리스도의 명칭 (대언자)란 말에 의하여 (대언) 혹 (대도)란 말을 병용하기로 한다.      5. 그리스도의 중재 대언사역의 구성      그리스도의 중재 대언사역은 그의 제사적 사역의 계속이며 그것의 완성에 인도하는 일이니, 그 필연적 기초를 형성하는 그의 속죄적 제사와 분리될 수 없다.    (중략) 중재대언의 성역자체가 충족히 이해되지 못하여 이것은 독점적으로 그리스도의 백성을 위한 그의 기도로만 구성된다는 것이 성행하는 관념이다.  기도가 그리스도의 대언사역의 중요부분임에 틀림없으나 그것이 사역의 전부는 아닌 것이다.  중재와 속죄는 그리스도의 동일한 구속사역의 두 방면 뿐이어서 둘이 하나로 합체될 수 있으니 둘을 분리하여 생각하지 않도록 우리는 항상 명심할 것이다.  말틴은 ‘성경에서 이 두가지가 끊임없이 병행하여 나타나며 서로 밀접히 관계됨을 보고 말하되 (중재 대언의 본질은 속죄요 속죄는 본질적으로 중재이다. 혹은 ... 중략....) (Martin, "The Atonement", p115).    제 4 절 제사직의 유일성    1. 그리스도만이 참 제사장.    제사직의 성질과 의장은 그리스도만이 진정한 제사장임을 제시한다.      3. 신자는 다 제사장이란 관념의 의미    기독교회안에 신자들과 그리스도 사이에 제사장들의 반열이 있을 수는 없으나 신자와 그리스도의 언약적 또는 생명적인 연합이 있어 그의 모든 인적은혜와 중보적 작용 및 특권들에 공동성을 합의한다.  신자마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께 나갈 수 있으며 지성한데 까지 이르러(히 10:19-22), 성화되고 영적으로 준비되어 (거룩한 제사장), (왕적 제사장)으로서 찬송, 감사, 간구의 제사들을 그리스도를 통하여 드리며 생존한 친두들을 위한 대도를 올릴 수 있는 것이다.(히13:15, 딤전 2:1, 2, 벧전 2:5,9).  같은 모양으로 그들은 그리스도와 공동생활에서 또한 선지자들과 왕들이다. (요일 2:20, 요 16:13, 계 1:6, 5:10).    찰스 하지는 말하되 (모든 신자들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께 나갈 자유를 가지고 있다. 그는 자기의 모든 백성을 하나님께 왕들과 제사장들로 만드셨다. (op. cit., Ⅱ., p. 467).    4. 성도들의 중재      하나님과 사람사이에 유일중보가 있고 우리가 하나님께 접근함에 경유할 유일 대제사장이 있다. 중재 대언은 제사직 작용이 하나님께 왕들과 제사장들인즉(그리스도의유일 왕과 제사장 되심에 모순되지 않는 관념) 어떤 의미에서 한 신자가 다른 신자를 위하여 대언할 수 있다.(그리스도의 유일 대언자 되심에 모순 없는 일이다). 그러나 신자들의 경우에 중재대언은 하나님의 한 자녀가 다른 한 하나님의 자녀나 모든 사람을 위하여 기도함을 의미한다.    이 의미의 대언은 단순히 위하여 기도함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경우에 이것은 그의 직임을 가지지 않은 다른 아무 사람도 행할 수 없는 직임적 행위.  구약시대에 한 이스라엘 사람이 자기의 형제들을 위하여 기도할 수 있으되, 대제사장만이 휘장안에 들어가 백성을 위하여 직임적으로 중재할 수 있는 것 같이 지금 우리는 서로 위하여 기도할 수 있을지라도 그리스도만이 능히 하나님앞에 제사장으로 나타나 자기의 공로를 근거로 하여 자기의 백성을 위한 자기의 기도가 응답될 것을 변소(辯疎)할 수 있다.      프로테스탄트교회는 로마교회에서 가르치며 시행하는 성도들의 중재 대언에 반대한다. 그 이유는        1). 이 일은 존재하지 않는 실유들 즉 성도화한 망령들의 반열을 추상한다. 그들은 그들의 공로 때문에 지금 천사들과 함께 하늘에 있다고 교회가 공적으로 선언하고 대언자들로 간주하는 자들이다. 그러나 이것은 교회의 권위없는 추상이다. 교회는 자체의 소욕대로 어떤 망령들을 영화한 영들로 결정하고 등록할 특권을 가지지 못한 것이다.        2). 이것은 실제적 우상숭배에 인도한다. 우상숭배란 피조물에게 신적 속성들을 돌려줌이라. 통속적인 마음에 성도들, 특별히 동정녀 마리아 는 편재하여 모든 때와 모든 곳에서 자기들에게 드리는 기도를 듣고 그 예배 자들의 궁핍을 구제하여 준다고 간주된다.        3) 이것은 그리스도에게 불경이다. 그는 하나님과 사람사이에 오직 한 분이요 충족하신 중보시며 그이 백성의 기도를 듣고 응답하시기로 항상 의욕하고 계시는 데 우리가 만일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께 접근할 다른 중보들을 요구한다면 그것은 그 안에 어떤 결함이 있다고 추상함이다.        4. 성경에 위반이다. 성도들이 그들의 공로 때문에 하나님께 대하여 운동력이 많다고 추상하는 것은 성경적이 아니다.  인생치고서는 하나님 앞에 이런 공로를 가지지 못한다. 아무 사람도 자기 자신의 구원으르 위해서는 더욱 없다.        5. 미신적이며 부패한 일이다. 미신이란 근거를 가지지 못한 신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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