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신, 믿음의 유산

신바다/M.Div.2 0 7,022 2009.10.05 16:06

SBD_DSC0008.gif

     
저는 합신에서 태어나고 자랐습니다. 왜냐하면 저의 아버지께서 합신을 졸업한 목사이기 때문이고, 또 저는 아버지께서 목회하시는 교회에서 목양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유년시절이 어렴풋이 회상되어집니다. 가끔씩 시찰회나 노회 때가 되면 아버지는 저와 함께 가셨습니다. 그때 제게 잊을 수 없는 기억은 목사님들의 모습이었습니다. 어렸을 때 제가 보았던 목사님은 정말 너무나도 좋았습니다. 함께 모여 정성껏 드리는 예배와 기도, 오랫만에 만나는 동역자들과의 즐거운 교제, 진솔한 대화, 서로의 아픔을 나누는 기도.. 그렇게 목사님들은 너무나 행복해보였고, 그들의 목회는 너무 즐거워보였습니다.

     아버지는 늘 합신을 생각하셨고, 사랑하셨습니다. 작은 시골에서 평생을 목회하셨고, 지금은 선교사로 섬기고 계시지만, 늘 합신을 위해 기도하며, 작은 물질이나마 학교를 후원하고, 성도들에게 신학교를 위해 기도하며 후원할 것을 가르치셨습니다.
    저는 아버지를 통해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며, 성경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교회를 섬기는 것 그리고 진실하고 정직한 삶으로 바르게 살아가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늘 진리의 말씀을 가르치고, 복음을 전하며, 성도의 본으로 살아가는 목자의 모습을 배웠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서 저는 지금 합신에서 신학을 공부하는 전도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비로소 아버지를 비롯한 제가 만난 많은 목사님들이 왜 그렇게 행복하셨는지를 그리고 왜 그렇게 목회를 하셨는지를 그리고 왜 그렇게 합신을 사랑하시는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합신에 대해 글을 써달라는 부탁을 받았을 때, 한참을 무엇을 써야할지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합신을 한 마디로 정의하며,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제게는 없기 때문입니다.
    탁월하신 교수님과 개혁주의 신학의 산실, 좋은 동역자들과의 만남, 신학과 경건 훈련에 매진하는 학교 등으로만 합신을 표현하기에는 제게는 무엇인가 부족한 것 같습니다.

    저는 저의 삶을 통해 합신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바른 신학과 바른 교회 그리고 바른 생활을 위해 걸으신 믿음의 선배들을 통해 저는 합신을 보았습니다.
    제 성경책 안에는 소중한 사진이 한 장 있습니다. 그 사진은 아버지께서 1986년 전남노회에서 목사안수를 받으실 때, 고 장경재 목사님과 함께 찍은 사진입니다. 장경재 목사님께서는 고 박윤선 목사님과 함께 합신을 세우신 목사님이십니다.
    당시 장경재 목사님께서는 서울에 있는 화성교회에서 목회를 하셨고, 화성교회에서는 전라남도 화순에 위치한 시골 마을에 교회를 개척하고, 아버지께서 이 교회(화순화성교회) 목회자로 파송되셨습니다. 
    장목사님께서는 거의 해마다 화순화성교회에 오셔서 말씀도 전해주시고, 교회를 돌보셨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늘 오시면 어린 저를 꼬옥 안아주시고, 쓰다듬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저는 마을 냇가에서 물고기를 잡아서, 어머니께 드리면 어머니는 맛있는 음식을 하셔서 목사님을 대접하셨습니다. 목사님은 제가 잡은 물고기가 너무 맛있다고 행복해 하셨습니다. 그리고 오실 때마다 동네 아이들의 이름을 기억하시고, 아이들의 이름을 불러주시고 쓰다듬어 주셨습니다. 그렇게 사랑이 많으신 분이셨고, 양떼를 돌보셨던 참 목자이셨습니다. 이제는 천국에 가서나 뵐 수 있지만, 목사님이 너무나 그립고, 보고 싶습니다.
     이러한 목사님의 베푸신 목양과 사랑이 제게 고스란히 전해졌고, 저도 지금 맡겨주신 아이들을 사랑하며 꼬옥 안아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맡겨주신 영혼들의 이름을 불러가며 사랑하고 있습니다.


    
올해 여름방학에는 아내와 함께 화순화성교회를 방문했습니다. 초등학교 때 그곳을 떠났기 때문에 오랜만에 방문이었습니다. 그리고 기회가 되어 수요예배에 설교를 하게 되었습니다.  설교를 하기 위해 강대상에 섰는데 저는 한참동안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진리의 말씀을 가르치며, 교회와 성도들을 사랑하셨던 믿음의 선배들이 사셨던 삶을 저도 걸으려 애쓰는 모습을 보고 한없이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아버지가 십여년 가까이 목회하시던 교회에서,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영원히 변하지 않는 진리의 말씀이 선포되어지는 감격과 그 말씀을 통하여 교회와 성도를 세우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사도가 데살로니가교회에게 고백했던 것처럼 목자에게 성도가 그들의 놀라운 영광이고, 기쁨임을 보게 되었습니다.

    
지난학기 따뜻한 봄날이었습니다. 채플을 드리고 식당으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앞에 두 분의 교수님이 걸어가고 계셨는데, 신복윤 교수님과 성주진 교수님이셨습니다. 두 분은 정겹게 말씀을 나누시다가, 연세가 지긋하신 신복윤 교수님께서 성주진 교수님의 손을 꼭 잡아주시고, 어깨로 감싸며 걷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믿음의 동역자를 격려하고 사랑하는 노 교수님의 모습을 보며 사도바울과 디모데의 모습을 생각했습니다.

    
수 많은 기억들과 삶이 지금의 저를 합신으로 인도했고, 합신의 삶을 살게 했습니다. 저는 합신이 완벽하다고 말씀을 드리고 싶지는 않습니다. 합동신학대학원이나 합신교단이 완벽하거나 혹은 최고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 하나님 앞에 부족하고 연약한 인생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합신을 사랑하는 이유는 바름(正) 이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기초한 바른 신학과 바른 교회 그리고 바른 생활을 하려하는 애씀과 노력들이 합신에 있기 때문입니다. 진리의 말씀으로 계속적으로 개혁되어져 가고, 성경이 말하는 바 대로 바르게 목회를 가르치며, 바르게 목회를 하는 지도자를 배출하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채플시간이 지나서도 하나님 앞에서 바른 신학을 가르치고, 바른 삶을 사는 좋은 스승 되기 위해 간절히 기도하는 교수님, 그리고 사랑하는 제자중에 어려운 전도사들이 없는지 늘 돌보시고 돕는 교수님, 연구실을 열어놓으시고 제자들을 만나는 것을 즐거워하시는 교수님, 이러한 믿음의 본이 되는 선배가 있는 학교가 합신입니다.
    많은 신학 수업과 과제에도 불구하고, 감사하게 당연히 감당해야 할 공부라고 생각하며, 순교하는 마음으로 밤을 세워가며 공부하고, 때로는 눈물과 애씀으로 학업과 사역을 위해 매진하는 학생들이 있는 학교가 합신입니다.
    그리고 늘 학교를 사랑하는 선배들이 있고, 교단과 교회 그리고 성도들이 눈물로 기도하며 섬기는 학교가 합신입니다.
    저는 이런 합동신학대학원의 정문을 지나 언덕을 오를 때마다 마음속 깊은 곳에 솟아오르는 감격이 있습니다. 때로는 눈물로 뺨을 적시며 학교를 오르곤 합니다. 그리고 너무나 감사하고 감사하게 합신에서 신학을 하고 있습니다.


    
선선한 바람이 불고 아름다운 단풍이 만발하는 가을이 되었습니다. 내일도 아침 일찍 학교에 오를 때에 주말에 더욱 아름다워졌을 학교의 모습을 생각해봅니다. 그리고 내일 조금 더 하나님을 알게 될 것이 기대되어지고, 사랑하는 동역자들과 나누는 교제가 기다려집니다.
    
그렇게 저는 이 학교에서 바른 목회자로 조금씩 훈련되어지고 있습니다. 지사충성하는 일꾼으로 준비되어, 하나님의 교회와 성도들을 말씀과 사랑으로 목양하며, 땅 끝까지 이르러 복음을 전하며, 하나님의 영광과 그의 나라를 위해 사는 것이 저의 소망이며, 합신의 선배들과 합신이 제게 가르쳐 준 바입니다.

    
이 땅에 사는 동안에 그리고 죽을 때에 제게 위로를 주는 단 하나의 사실은 나의 몸과 영혼이, 이 땅에서 사는 동안에도 그리고 죽을 때에도 내가 소유하고 있는 나의 것이 아니라 나의 신실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소유한 주님의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 1문)

    
Soli Deo Gloria!


SBD_DSC0011.gif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