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돌아보는 신학교 3년

최상규/M.DiV.3 0 5,348 2009.10.02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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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태신앙으로 부모님의 신앙을 이어받아 난 어려서부터 성경 이야기들에 익숙했다. 이로 인해 하나님에 대한 지식들은 자연스럽게 내 삶에 자리 잡았다. 교회에서의 예배와 각종 활동은 너무나 익숙한 것이 되어서 어떤 자리에서도 기도하지 않고 식사를 하면 어색할 정도였다. 하지만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지식으로만 알고 있던 하나님에 대한 인격적 신뢰를 가지게 되었고, 예수 그리스도를 내 주인으로 고백하게 되는 은혜를 경험하였다. 당시 많은 친구들이 그랬듯이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 후, 무언가 하나님 앞에 삶을 드려야 한다는 부담감에 목회자로 내 삶을 헌신하겠노라고 기도했다. 그 후 대학에 진학하고, 군대에 다녀오고,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 내가 받은 은혜는 흔적으로만 남아 있고, 삶에서는 지워져 버렸다. 그러던 중 한 선교단체의 훈련을 통해서 하나님은 내게 주신 은혜를 새롭게 하시고 부르심의 자리를 기억케 하셨다. 흐트러진 삶을 가다듬고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면서 나는 하나님께 기도했고, 하나님은 내게 마음의 소원으로 두신 일에 심적 부담을 주셨다.

   이 때 난 나이 마흔을 앞두고 있었다. 이미 초등학생 두 아들을 둔 가장이었다. 내 마음 속에 새롭게 된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어도, 나 혼자 만의 결정으로 새롭게 삶을 살고자 하는 것은 무책임하게 느껴졌다. 또한 난 교회에서 성경을 가르치는 교사로서 그리고 청년들을 지도하는 부장으로서 역할을 감당하고 있던 터라 개인적으로는 이 자리를 떠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기에 이 때 내가 해결해야 하는 일은 두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가정의 구성원들의 동의를 구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교회 공동체가 나의 부르심에 대한 동의를 해 주는 것이었다. 먼저 아내에게 내 마음을 나누었다. 아내의 동의는 내게 매우 중요했다. 왜냐하면 그녀는 누구보다 내 삶을 잘 알뿐더러 내 은사를 알고 어쩌면 새롭게 시작하게 될 사역의 영원한 동반자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아내는 두 달여를 기도하면서 결정을 하였다. “당신과 같은 마음은 아니지만, 내가 당신을 사랑하기에 당신의 뜻을 존중해”라고 말하였다. 아내와 난 성탄절 오후에 아이들을 데리고 양화진 순교자 기념묘역을 찾았다. 복음을 위하여 낯선 땅에서 삶을 보낸 선교사들의 삶을 아이들과 나누었다. 그리고 그들이 이렇게 살 수 있었던 것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일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 나눔 끝에 우리 부부의 결정을 아이들에게 나누었다. 뜻밖에 아이들은 우리의 결정에 흔쾌히 동의했다. 그들은 우리의 결정이 미칠 영향에 대해서는 모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가족의 동의를 얻은 후, 교회 공동체의 동의를 구하기로 하였다. 목사님을 찾아뵈었다. 그리고 나를 잘 아시는 장로님에게 이 사실을 나누었다. 나아가 함께 섬기는 청년부 지체들과도 이 사실을 나누었다. 감사하게도 목회자의 길을 나서는 나를 기쁘게 추천해 주셨고 이 사실은 지금까지도 내게 큰 힘이 되고 있다.

   난 합동신학대학원을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어려서부터 자라온 교회는 총신대학원이 속한 합동교단이었고, 결혼 후 섬겨온 교회는 고려신학대학원이 속한 고신교단이었다. 특별히 어느 곳에 대한 거부감에 합동신학대학원을 선택한 것은 아니었다. 사실 교파의 상황을 잘 알지는 못한 상황에서 내가 합동신학대학원을 선택하도록 영향을 미친 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합동신학대학원에서 공부를 마치고 선교사로 사역하고 있는 오랜 믿음의 친구였다. 그에게 학교 선택에 대한 조언을 구했을 때, 그는 합신을 추천해 주었다. 그의 추천의 말은 길지 않았지만 분명했다. “상규형제! 합신에는 가르치는 대로 사시는 선생님들이 계셔!” 나이 들어서 시작하는 공부에서일까? 내겐 학문에 뛰어나다는 말이나, 좋은 동문들이 있다는 말이나, 졸업 후 사역에 도움이 된다는 어떤 말보다도 이 말이 설득력이 있었고 주저하지 않고 합신을 선택하게 되었다. 이 추천의 말은 합신 졸업을 앞두고 있는 내가 개인적으로 확인한 바이며 자랑스러워하는 부분이다

   학교에 입학했다. 신학교에 입학하여 내가 첫 번째 해야만 했던 작업은 “내 생각의 옷 벗기”였다. 난 내가 어느 정도 안다고 생각했다. 나름대로 성경을 공부했고, 신앙에 관한 책들을 꾸준히 읽어왔기에 어느 정도 지식을 가졌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나의 생각은 한 학기가 가기 전에 무너졌다. 그때까지의 나의 신앙은 주어진 시간과 공간 속에서 이루어지는 경험에 의존하고 있는 평면적 이차원적인 것이었다. 하지만 신학을 공부하면서 이는 “나”와 “경험”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시간적으로 적어도 2,000년의 기독교 역사 선상에 있는 나를 보게 되었고, 공간적으로는 하나님나라라는 관점으로 세계를 바라보아야 했기 때문이었다. 이는 4차원적인 것이었다.

    불혹(不惑)의 나이에 입학한 나에게는 이미 신학에 관한 수없이 선입견들이 생각과 삶 속에 혼재해 있었다. 하지만 공부를 시작하면서 내 안에 쌓여 있던 것들이 산산조각 나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에는 무지를 인정하고 새롭게 알아야 한다는 사실이 무척 힘들었다.  심지어 전도사로서 사역하는 교회에서 가르치기가 쉽지 않을 만큼 지적 왜소함 가운데 들어갔다. 그러나 “알듯 하다가 무지 속으로 다시금 알듯 하다가 무지 속으로”를 몇 차례 반복하면서 내 삶에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이를 통하여 나를 아는 지식이 조금씩 성장해 가고, 믿는 바의 이유를 묻는 이들에게 설명할 수 있는 기초들이 조금씩 갖추어 가게 되었다.

    이러한 신학적 지식의 리빌딩(Rebuilding)은 내게 여러 가지 변화를 가져왔다. 첫째, 세계이해의 중심이 “나”에서 “하나님”으로 바뀐 것이다. 나와 나의 경험이 판단의 기준이었던 것으로부터, 하나님과 그분의 뜻의 관점으로 판단의 기준이 바뀐 것이다. 둘째로, 나와 나의 관계라는 부분에서만 바라보던 것이 하나님의 나라라는 우주적 관점으로 바뀐 것이다. 셋째, 내게 주신 부르심에 대한 변화이다. 하나님은 나를 사역에로 부르셨다는 생각에 늘 무슨 일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집중되어 있었던 내가 이제 하나님의 전체 뜻 가운데 있는 나를 보게 된 것이다. 나를 일꾼이 아닌 아들로 부르셨다는 사실에 더욱 집중하게 되었고, 일의 결과가 아닌 하나님의 크신 일에 참여되어 있는 그 자체에서 내 사명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나는 3학기를 마치고 선교지 경험을 위하여 2년 동안의 단기 선교를 다녀왔다. 그리고 이제 졸업을 앞두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졸업 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묻곤 한다. 내 스스로도 이에 대해 묻는다. 얼마 전 교회의 한 집사님과 이야기 하다가 이 문제에  대해 나누었는데 그분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뭐가 걱정이세요. 이미 일이 정해졌잖아요!” 그분은 내게 염려하지 말라는 말을 한 것 뿐이었지만, 내게는 하나님의 예비하심을 기억하게 하는 말이 되었다. 영원하신 하나님과 유한한 인간이 만나는 시간은 현재이다. 무한하신 하나님과 유한한 인간이 만나는 공간은 여기이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현재와 여기 속에서 나를 인도하실 것을 안다. 지금 내게 주어진 것은 목회자로서 잘 훈련되어지는 것이다. 기회가 주어지는 대로 한 생명 한 생명을 향해 말씀을 전하고 가르치고 권면하여 온전한 사람이 되도록 돕고, 그래서 그들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기쁨을 누리도록 돕는 자로 서려 한다. 한편 주님은 우리로 하여금 그의 기쁘신 뜻대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기에, 오늘 내게 주신 경험과 은사와 관계를 통하여 말씀하실 것이다. 그러기에 주님이 소원케 하신 것들에 대한 복된 꿈을 꾸고 산다.

    합신에서의 삼년을 마감하는 시간이다. 참 행복했다. 그리고 학교와 선생님들에게 감사하다. 이런 것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다. 이제 주 안에서 자유가 무엇인지를 알 것 같고, 하나님이 주신 자유로 사랑으로 종노릇하는 길을 떠나는 마음에 기대가 있다. 주님이 이끄시는 대로 소원을 주시는 대로 기쁘게 따라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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